인구가 줄고 있다. 출산율도 낮아진다. 인구 소멸의 걱정을 한다. 미래가 걱정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22년도 가임여성 1명당 0.778명. 남녀 둘이 만나 1명의 아이도 낳지 않는 수준에 이른 지 한참이다. 대한민국이 소멸 중이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그걸 막아내는 사람이 우리 가족이다. 우리 가족은 5명. 아빠(80'), 엄마(78'), 큰딸(6학년), 작은딸(2학년), 막내아들(올해 유치원). 아이가 셋이다. 조금 과장하면 국가 유공자 수준이다.
우리 부부는 2010년 결혼했고, 이제 곧 결혼 15년 차가 된다. 내가 31살, 아내가 33살에 결혼을 했으니 빠른 결혼도 아니다. 이듬해 첫 째를 낳고, 막내는 아내 42살에 낳았다. 노산이었지만 아이 엄마 모두 건강하다. 심지어 막내아들은 숫자에 대한 개념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빠르다. 아이들이 나이차도 제법 있다. 아이들의 나이차는 모두 4살씩. 둘째까지도 몰랐는데 막내가 대학교를 가게 되면 아빠엄마는 환갑을 넘는다. 늙은 엄빠가 된다. 그때까지 아이를 부양하려면 열심히 살아야 싶다. 아이를 몇 이나 낳을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부부가 한다. 우리 부부의 결정은 아이 셋. 이렇게 가족이 되었다.
다둥이 힘들지 않으냐 묻는다. 물론 힘들다. 첫째를 키우고 둘째까지 키울 자신이 없어 외동으로 결정했다는 옆동 부부. 공감한다. 맞벌이를 해야 해서 아이가 둘 이면 커리어에 문제가 생긴다는 뒷동 부부. 역시 공감한다. 모두 묻는다. 아이 셋 어떻게 키워요? 우리는 말한다.
"죽을 거 같아요 ㅎㅎ"
솔직히 아이 셋 키우기 힘들다. 아내가 아이들을 좋아한다. 내가 본 사람들 중 모성애가 가장 깊다. 아이들을 위하면 뭐든 희생할 사람이다. 때로는 안타깝다. 사업도 하며 육아를 하기란 쉽지 않은데 와이프는 한다. 대부분 아빠들이 바쁘면 육아. 일중에 하나를 택한다면 와이프는 둘 다 놓지 않는 성격이다. 내가 혼자 결정했다면? 아이들 둘도 버거웠을 것이고, 셋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미안해 막내야.
그. 럼. 에. 도. 불. 구. 하. 고.
다둥이라 느낄 수 있는 기쁨들은 넘친다. 그래 낳고 키우기가 어렵지 커가며 고난의 결과는 더 달다.
스스로 하는 습관이 쉽다.
아이가 셋이면 모든 아이들을 외동처럼 대해주기 어렵다. 손이 부족하다. 시기가 되면 스스로 하는 법을 깨우친다. 외동일 때 보다 둘째 셋째일 때 이 시기가 빨라지는 것 같다. 막내로 갈수록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스스로를 챙길 줄 아는 시기가 빨라진다. 이제 아이들은 뷔페를 가면 스스로 접시를 들고 먹고자 하는 음식을 챙길 줄 안다.
작은 사회가 생긴다. 아이들 셋이면 이 숫자도 하나의 사회다. 선배가 있고, 후배가 있다. 선배로써 후배를 돌보는 법을 배우고 후배로 선배들을 따르는 법도 배운다. 아직 아이들이라 투닥거리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큰누나라고 따르고 동생이라고 챙기는 걸 보면 다둥이들의 사회생활이 좀 더 유연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다둥이들은 외동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빠르게 사회를 접한다고 생각한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이 셋의 밥상은 항상 모자라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아무리 많이 준비를 해 두어도, 다른 사람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그들의 몫은 금방 사라진다. 나는 모든 아이들이 과일을 잘 먹고, 간식들을 잘 먹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간식도 잘 먹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유치원의 학부모들도 많았고, 다둥이보다는 외동의 경우가 흔했다. 외동의 간식은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다둥이의 간식은 내가 먹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것도 하나의 경쟁이다. 그래서 다둥이가 되었을 때 음식을 먹이는 것이 더 수월했고, 편식도 없다. 이것도 다둥이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정신적 노후가 좀 든든하다. 나는 외동이다. 외아들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후천적인 외동이다. 동생을 먼저 잃었다. 이제는 친가의 대소사에 대한 모든 책임과 의무는 내가 오롯이 짊어져야 한다. 때로는 두렵다. 가족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마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이를 함께 나눌 형제가 없다. 아내는 4남매다. 와이프 역시 언니를 잃었다. 처가 식구들이 처형에 대해서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나는 오롯이 나 혼자 머릿속으로 그리워한다. 부모와 나누는 그리움과 형제가 나누는 그리움은 다르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것이다. 지금 내 처가 식구들이 그렇다. 가지가 많으면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도 있다. 사건 사고는 외동에 비해 더 많을 것이다. 불화가 많으면 남보다 못한 게 가족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로 막아줄 바람은 그 보다 더 많은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
다둥이는 키우기 힘들다. 손도 많이 가고, 돈도 더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때는 10년 동안 육아만 했다며 투덜거렸다. 내 삶도 없어지는 듯, 나라는 인간의 존재 가치는 육아인가 싶었다. 키워놓으니 좋다. 집안이야 늘 어지럽혀 있고, 하루 이틀만 미뤄도 빨래하는 양이 어마어마하다. 용돈을 주어도, 선물을 주어도 외동보다 세배는 더 들어간다. 아이들이 나쁜 것도 빨리 배운다. TV나 미디어, 게임을 접하는 시기도 또래보다 빨라진다. 그런데 돌아보면 아이들을 키우는 내가 힘든 것이다. 아이들은 힘들지가 않다. 집에서 혼자 놀지 않아도 되고, 학교에 가면 가장 든든한 방패가 있으며, 무서운 밤길도 혼자보다 형제라면 서로 손을 꼭 잡고 걸을 수 있다. 철들면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아이들에게는 형제가 있는 것이 좋다. 혹 사고 치는 형제는 남보다 못하다고 하지만, 내 주변에 사고 치는 사람이 꼭 형제만은 아니다. 그런 일은 형제가 있건 없건 일어날 수 있다. 아이들은 형제가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성장하면서 느낄 것이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다둥이를 키우셨는지 알게 될 거다. 지금의 추세라면 우리 아이들도 외동아이를 키우게 될 가능성이 크겠다. 그럼 3남매를 키워낸 니들 부모(?)의 고생에 대해 좀 이해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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