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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_화요일_동생은죽고나는살아있다.

9살 아이에게 허락된 것

by 성준이라 2023.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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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무울~"

"또? 방금 전에도 마셨잖아 또 목이 말라? 운동을 열심히 했나? 아니면 오늘 음식이 좀 짠가?"

"그냥 목이 말라요"

 

나와 함께 마당에서 놀던 성준이가 또 물을 마시고 왔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좋다. 방도 세 개나 되고 마당도 있고, 옥상도 있다. 그리고 방 중에 한 방은 입구가 두 개다. 현관으로도 들어갈 수 있고, 옆문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아버지는 이 방을 월세를 놓으실 계획이라 하셨다. 아 그러고 보니 화장실이 밖에 하나가 더 있다. 지금까지 살던 집이랑 완전 다르다. 마당에는 수도꼭지도 있다. 하루 종일 성준이랑 마당에서 논다. 마당에서 딱지치기도 하고, 비석 치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한다. 이제는 마당에서 뛰고 소리를 질러도 엄마가 뭐라 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난 기분이 좋다. 해가 뉘엿 넘어가려 한다. 배도 고프다. 

 

"혀엉~ 들어가자. 힘들어"

 

성준이와 집에 들어와 티브이를 켰다. 딱 만화영화가 나올 시간이다. 성준이와 정신없이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저녁이 다 된 모양이다 어머니가 부르신다. 

 

"얘들아 저녁 먹자"

"네... 성준아... 엄마가 밥 먹으래.... 어... 엄마!"

함께 티브이를 보고 있는 줄 알았던 성준이가 옆으로 쓰러져 자고 있다. 자고 있는데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부엌에 계신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왜? 왜? 왜? 무슨 일이야?"

"엄마 성준이가.. 자는데.. 자는 거 같은데... 자요.."

"성준이가 잔다고? 벌써? 성준아~ 밥 먹자"

 

"네 에에에~"

 

성준이가 힘겹게 고개를 들고는 길게 대답을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방금까지 괜찮았는데 굉장히 말도 어눌해지고 눈도 이상하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으켜 세워도 힘없이 픽 쓰러지는데 이건 내가 봐도 졸려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엄마의 눈빛이 심하게 떨린다. 며칠 전 다녀온 병원이 생각난다. 그 뒤로 엄마는 말씀이 줄으셨다. 자꾸 초조해하시곤 한숨을 쉬시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자세히 듣지 못했는데 서울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셨다. 병원 이름은 기억한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이다. 연세대를 가고 싶었기에 병원이름이 마음에 들어 기억한다. 엄마는 성준이를 일으켜 앉히시고는 입에다 사탕을 하나 쪼개어 물려주셨다. 밥 먹을 시간인데 사탕은 왜 주실까? 싶었지만 나는 잠자코 있었다. 한참만에 일어난 성준이는 정신이 멍하기는 했지만 의식을 찾았고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었다. 

 

 

"니가 성준이 형이니?"

"네? 네 제가 성준이 형이에요"

"선생님 알지? 선생님 성준이 담임 선생님이야. 너는 그래.. 동생이 아프면 선생님한테 와서 '제 동생이 아픕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인사를 하러 와야지 왜 인사하러 오지를 않니?"

"네? 아... 죄송합니다."

 

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니 당시엔 국민학교 4학년 때 일이었다. 복도에서 한 선생님이 성준이 담임이라며 왜 인사를 하러 오지 않는지 따져 물으셨다.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희미하지만 질책스런 말투로 채근하셨다. 정말 나에게 인사를 하러 오라 하셨던 건지 아니면 부모님의 촌지를 기대하셨는지 모르겠다. 국민학교 4학년 11살 아이가 뭘 알았을까. 그저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야 했구나 반성했다. 이상하게도 그게 어린 시절 성준이를 생각하면 항상 이 장면부터 기억이 났다. 

 

성준이는 국민학교 2학년 제1형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또래보다 키도 조금 작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성준이가 당뇨병이라고 했다. 당시에 난 당뇨병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그저 우울한 표정의 어머니가 성준이에게 이거 잘 먹고, 주사 잘 맞으면 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실 때 생각보다 심각한 병이란 건 느꼈다. 아버지의 집안쪽으로 나는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시절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계시다. 4형제 아버지의 제일 큰 형님이시다. 제일 막내이신 아버지와는 20여 년 정도 차이가 나실 정도라 하셨다. 그 큰아버지가 당뇨병으로 고생하시다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아마도 성준이의 당뇨병은 집안의 유전적 요인인 듯했다. 1형 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이 전혀 분비가 되지 않아 발생한다. 한마디로 췌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로 어린 시절 발병하곤 해 소아 당뇨라 불린다. 전체 당뇨 환자의 2% 미만이며, 췌장이 기능을 하지 못하기에 인슐린 주사는 필수선택이었다. 성인 당뇨가 비만등의 식습관으로 인슐린의 저항성이 커져서 생기며, 중년시기에 서서히 진행되는것과 다르게 소아당뇨는 갑자기 발병한다. 어느 날 갑자기. 

 

과거엔 소갈증이라 불렸다. 목이 심하게 말라서 물을 마셔도 소변이 적게 나온다고 했다. 소변은 거품이 심하다.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오고 식사를 제때 하지 않으면 저혈당이 와서 정신을 잃기도 한다. 성준이가 그랬다. 그날도 저혈당으로 잠시 쇼크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당뇨인에겐 때로는 무리한 놀이도 적이 되곤 한다. 9살 아이에게 많은 것들이 제한되었다. 맛있는 간식. 달콤한 과자. 배부르게 먹는 포만감을 느껴서는 안되었고 혈당을 낮추기 위해 걸어야 했고 움직여야 했다. 9살 아이는 음식과 운동 사이의 균형을 배워야 했다. 어느쪽도 치우쳐서는 않되었다. 너무 맛있는 걸 먹어도, 너무 재미있게 놀아도 생활이 힘들어진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단 우리 집 음식에 모든 맛이 사라졌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단 맛을 극도로 혐오하셨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어머님은 그렇게 자책하셨다. 음식에 단 맛과 감칠맛등 소위 간이라 불릴만한 맛들이 사라졌다. 밥은 현미를 섞은 잡곡밥에 간이 슴슴한 나물반찬 약간의 단백질 그리고 싱거운 국들. 매일 병원의 환자식을 먹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간식으로 받지 못했고, 누에 가루나 쇠뜨기 풀 다린 물 같은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모두가 다 동생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런 식단 관리를 하면서도 동생은 하루 세 번 자신의 몸에 주사를 놔야 했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신호가 되었다.

이런 식단관리와 주사를 맞으면서도 방학이 되면 일주일 가량을 병원에 입원하여 검사를 하고 진행정도를 파악하고 합병증 등을 검사했다. 그 시절 나는 외갓집에 맡겨지거나, 이모집에 잠시 맡겨지곤 했다. 병원에 다녀오면 어딘가 좀 지쳐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겠지. 엄마가 잘 챙겨주시겠지라고 생각했고, 자세한 경과도 잘 묻지 못했다. 

 

 성준이는 사춘기가 지나며 점점 반항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하지 마라, 먹지 마라, 운동해라, 등등 강요에 지쳐서일까. 먹지 말아야 할 음식에 손을 데고, 운동을 피하고, 주사를 거르기도 했다. 결과는 고스란히 몸으로 신호가 와서 제때 식사를 하지 않아 저혈당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단음식을 많이 먹어 고혈당 쇼크가 오기도 했다. 20대가 넘어서는 술을 마시다 병원응급실에 실려가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9살부터  33살. 세상을 떠난 그때까지 성준이는 24년 동안 최소 하루 3번의 주사를 맞았다. 대략 26,300번 정도 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점심을 학교에서 먹으면서부터 성준이는 스스로에게 주사 놓는 법을 배워야 했다.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했고, 부탁하기도 쉽지 않았다. 열 살을 갓 넘긴 아이가 스스로의 팔다리를 찔러 인슐린을 맞아야 했고, 때로는 창피해 화장실 변기칸에서 몰래 주사를 놓곤 했다. 성준이가 중학생이 될 무렵쯤에는 차고 다니는 인슐린 주입기가 나왔다. 복부에 얇은 바늘을 꽂고 일상생활을 하면 식후에 버튼 하나 만으로 인슐린이 주입되는 것이다. 쉽게 보면 링거를 맞으며 일상생활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춘기의 사내아이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성준이는 뛰어노는 것을 택하고 스스로 주사 놓기를 택했다. 간식은 함께 먹지 못해도 노는 것은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매일 주사를 맞는 자리는 마사지로 잘 풀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혹처럼 부풀어 오른다. 성준이가 매일 주사를 맞던 왼쪽 상박의 팔은 간장 종지를 엎어 놓은 것 마냥 혹이 잡혀 있었다. 그 부어오른 혹이 성준이가 맞다는 것을 확인해 줄 방법이 될 줄은 세상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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