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밤늦게 흡연의 즐거움을 만끽하고는 12시를 조금 넘겨 잠에 들었다. 포근한 온수매트가 깔린 침대에는 둘째가 잠들어 있고, 바로 옆방에는 막내 아이가 홀로 자고 있다. 두시를 넘겼으려나 갑자기 찢어지는 목소리로 둘째 아이가 엄마를 찾는다
"엄마! 엄마!... 엄마!~"
막 잠이 들락 말락 할 때라 스프링처럼 몸을 일으켜 옆방으로 향했다. 가습기로 촉촉해지고 은하수 조명이 반짝이는 등불 아래서 막내는 그냥 잠들어 있다. 잠꼬대를 한 듯하다. 꿈을 꾸었나? 아니면 내가 꿈을 꾸었나?
다시 옆방으로 돌아갈까 하다 오랜만에 막내와 잠을 자기로 했다. 몇 시간 후면 아침을 하려 일어나야 한다. 4시간쯤 남았으니 어서 잠들어야 한다. 피곤했던지 옆에 눕자마자 잠에 빠졌다. 한참을 잤다 이제 곧 알람이 울리겠거니 하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이제 5시 03분이다. 보통 기상 시간이 6시 20분이나 아직도 한 시간이 더 남았다. 잠들어야 한다. 잠드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젯밤에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인지 금방 잠에 들고 알람이 울렸다. 진짜로 일어나야 한다.
아침은 하얀 쌀밥에 떡갈비를 두 개 굽고, 다시마로 참치를 김밥처럼 말았다. 초장을 살짝 올리니 그래도 먹을 만하다. 계란 3개는 반숙으로 먹기 좋게 자른 떡갈비 위에 얹었고, 이제 와이프를 위한 샐러드를 해야 한다. 샐러드야 쉽다. 주문한 야채를 한 번 씻어주고 물기를 잘 빼고, 그사이 아몬드를 좀 잘게 부수어 토핑처럼 올리고 연어를 먹기 좋게 토막 썰자. 깎둑 연어를 얹고 아몬드 토핑을 뿌리고 홀스 레디시 소스를 뿌리고 마지막으로 트러플 올리브 오일을 한 바퀴 슈악~ 돌리면 끝이다. 어젯밤 큰 아이와 엄마의 사춘기대 갱년기 한바탕의 여파가 남아서일까 서로 대면대면하다. 상대방에게 말하는데 직접 말하지는 않는다.
"언니한테 물 잘 챙겨가라고 해"
"엄마한테 알았다고 해"
중간에 낀 둘째가 불쌍타
아침은 이런 일을 일일이 따질 시간이 없다. 8시에 첫 번째로 등교하시는 막내 유치원이 더 급하다. 등원 10분 전 아직도 아침을 드신다. 나만 맘이 급해진다. 엊그제부터 잃어버린 원아 수첩은 오늘도 못 찾았다. 날씨가 춥다 하니 내복에 원복에 경량 조끼에 패딩에 털모자까지 씌워 보낸다. 다행히 오늘은 기분이 좋아 방긋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신다. 어제는 유치원 가기 싫다며 버스 앞자리에 이마를 묻고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저놈의 변덕은.. 귀엽다. 이제 집에 들어가면 초등학생 아이들이 등교준비를 도와야 한다. 어제 한바탕 해서인지 큰 놈은 일찍 나가고 싶나 보다. 벌써 준비를 마쳤다. 둘째는 엄마 눈치를 살살보다 엄마 맘을 풀어준다며, 계속 애교를 부리며 안긴다.
"엄마 뽀뽀~. 오늘 머리 양갈래로 예쁘게 해 주세요~"
"아냐 오늘은 애교머리로 해줄게"
둘째의 애교에 엄마는 살짝 기분이 나아진 듯하다. 난 모른 척 서둘러 애들을 보낸다. 8시 반 아이들이 모두 집을 나섰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집안일이다. 아침 날씨가 한파긴 하지만 어젯밤 틀어놓은 가습기 때문이라도 환기를 한 번 시켜주어야 한다. 안 그럼 겨울에 곰팡이로 속이 썩는다. 창문을 활짝 열고, 어젯밤 잠든 잠자리를 정리한다. 안방, 막내방, 작은 아이방, 작업방, 엄마가 일하는 방은 일단 대기. 찬바람이 발목을 훑고 지나가는 게 너무 시리다. 겨울이 싫다. 거실에 아이들이 놀며 널어놓은 장난감을 치우고, 건조기에서 꺼낸 세탁물을 개고 정리하고, 아침 먹은 그릇을 치우고 식세기를 돌린다. 평소에는 여기서 청소기만 돌리면 그래도 어느 정도 아침 일과가 끝이 나련만 오늘은 할 일이 두 가지나 더 남았다.
강아지들 목욕하는 날. 요즘 각질로 영 꼴이 말이 아니다. 미관도 그렇고, 바닥에 한가득 허연 각질을 떨구는 것도 영 마음에 안 든다. 강아지 입양할 때 그렇게 말리고 경고했는데 본인들이 다 한다더만.... 역시나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 귀 청소, 미용 목욕과 약용 목욕까지 강아지 한 마리당 세 번의 샴푸를 했다. 나도 샴푸 한 번으로 머리 다 감는다 이런 개.... 강아지야. 한 마리 강아지를 씻기고 드라이룸에 넣어 잘 말려주고 그 사이 스팀걸레를 돌린다. 어제 와이프님이 한 마디를 남기셨기에
"이제 걸레질할 때가 되었나 봐. 걸레질 한 지 얼마나 되었지?"
와이프는 우리 집에 스타 같다. 군부대의 스타! 손가락 하나로 산을 움직이신다. 오늘도 한 마디로 우리 집 모든 바닥을 스팀으로 싸악 닦아 주었다. 강아지 한 마리 목욕시키고 드라이룸 돌리는 40분 동안 스팀걸레질을 싸악 해주시고 또 다른 한 마리를 또다시 세 번의 샴푸를 하고 헹궈 주신다. 그리고 요 녀석을 다시 드라이룸으로 넣으니 11시다.
아침이 간단했으니 조금 일찍 와이프의 점심을 챙긴다. 이미 오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기에 난 라면이 먹고 싶은데.. 와이프는 안 드신단다. 요즘 앉아서만 일 했더니 살이 좀 오르셨다고 탄수화물을 꺼리신다. 그럼 난 감을 하나 깎고, 아몬드 한 줌과 요구르트를 준비해 간식 겸 점심으로 넣어드리고 나는 라면 한 그릇을 뚝딱! 오래간만에 떡 도 좀 넣고, 고춧가루도 넣고, 계란도 넣고, 식탁으로 가는 것도 사치라 인덕션 위에서 후루룩 한 그릇으로 점심까지 해결!
이제야 어젯밤 써두고 오늘 아이들 보내며 올린 연제 글의 라이킷도 확인하고, 또 글을 쓰려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나는 이 모든 일을 지금처럼 글을 쓰기 위해 한다.
몰랐는데 나는 글을 쓰고 싶어서 무엇이라도 하게 된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그리고 꾸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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