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내려가면 나는 귀에 메니에르 병이 있다. 청력 저하를 동반한 어지럼증이 특징이다. 이제는 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 완전 쥐약이다. 코에는 만성 비염을 달고 산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아래 어금니가 하나 빠져 있는데 제때 치료를 안 했더니 위 어금니가 주저앉아 이제 임플란트 하려면 위아래 둘 다 해야 한다. 그 외 충치도 다수다. 비염과 강아지 알레르기로 (우리 집은 강아지가 두 마리인데...) 어쩌다 만성 호흡기 질환이 생겼다. 허리는 디스크는 아닌데 근육이 꽤 잘 놀란다. 비만도 아닌데 고지혈증이 약하게 있다. 그리고 치질약을 먹어야 했던 적도 있다. 내 몸은 그렇다. 아. 우울증을 앓고 약도 잠시 먹었다. 이중에 브런치에 썼던 건 우울증과 허리 두 가지 소재였다.
갑자기 웬 신체 고백일까?
두 가지 소재의 글을 발행하고 생각했다. 허리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것에 조금 더 주저했음을 알았다. 우울증을 고백하는 것이 더 쉬웠다. 브런치에서 우울증에 관한 글들을 많이 보아서일까?
"나 우울증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에 주저함이 별로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있다는데 뭘 '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허리에 관한 글을 쓸 때는 느낌이 달랐다.
허리가 아파 움직이지 못하면, 집안일도, 아이들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하찮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게 너무 속상했다.
나란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는 느낌.
- 브런치 글 성준 [허..허히하 하하효..] 중에서
내 허리에 관한 이야기를 고백하면서, 글로 쓰는 그런 감정을 다시 느꼈다. 내 허리가 좋지 않다는 것을 고백하면 내 가치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울증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왜 나의 육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더 주저했던 것일까? 심지어 이 글 도입에 "치질약을 먹은 적 있어요~"라는 고백도 여러 번 망설임 끝에 넣었다. 침대 위의 생각은 이 새벽 나를 노트북 앞으로 이끌었고, 브런치에서 [장애]를 검색했다. 나는 대중과 비슷한 생각에서였을까?
1. 가장 많이 보이는 글 - 공황장애, 우울증과 관련된 정신 질환
2. 신체적 장애 - 타인의 신체적 장애의 관찰자로서의 글들
3. 자신의 건강에 관한 걱정들
순으로 눈에 뜨인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의 육체에 대해서 약점을 말하는 것을 더 주저하는 것 같다. 나는 언제부터 우울증보다 허리아픔, 치질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던가.
우리는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잘 믿는다. CCTV, 핸드폰, 블랙박스, 홈캠,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다. 이제는 도둑 잡는 건 일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할 길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아이돌을 하려면 학폭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다 기록되고 증거가 남으니까. 이제는 경험담보다 증거를 가져오라고 말한다. 귀신을 봤다고 하면 이제는 심령사진을 내놓으라고 한다. 어제 잡은 대물 붕어 이야기 보다 증거 사진을 요구한다. 소개팅에서 만난 여인의 만남 과정보다는 셀카를 내놓으라 한다. 눈에 보여야 사실이 된다. 보이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미지가 전부다.
소개팅에서 얼마나 친절한 사람인지, 생각은 얼마나 올바른지, 꿈은 있는지, 취향은 어떤지, 남을 잘 배려하는지에 관한 질문은 첫 번째 관문을 넘어야 한다. 첫 번째 관문은 잘 생겼는지 혹은 예쁜지. 우리는 대부분 첫 번째 관문을 잘 넘지 못한다. 우리에게 보이는 면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우스갯소리일지 몰라도 한국은 아시아에서, 세계적으로 잘 꾸미는 국가라는 이미지다. 전체는 아니지만 남자도 화장하는 국가라는 소문마저 돈다. 한국 사회에서 비주얼은 중요한 요소다. 조금 과장하자면 신체적 우월함이 계급이 되는 사회다. 비주얼의 사회에서 신체적 약점은 감출 수밖에 없다.
비주얼의 최고 계급인 연예인들의 공황 장애가 정신질환에 관한 이미지를 크게 개선했다 생각한다. 이전까지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우울증은 자살로 이어지기 쉬운 질병, 공황장애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연예인들의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대한 고백은 신문 기사로 나올 정도로 이슈가 되었다. 정신질환을 고백하는 것에 연예계의 생명을 걸만큼 큰 일이었다. 허나 인식은 의외로 쉽게 개선되었다. 비주얼의 최고 계급의 연예인들이 겪는 정신질환의 이미지화되었다. 멋진 사람들이 겪는 정신질환. 왠지 근사해 보인다. 공황장애는 연예인들이 걸리는 병, 우울증은 정신적 감기 정도로 일상에 쉽게 파고들었다.
이미지가 좋아야 설득이 쉽고, 받아들여지기 쉽다. 우리는 이제 이런 과정이 익숙하다. 이런 사회에서 육체적인 질병과 장애는 정신적 질병과 장애보다 눈에 보이기가 쉽다. 우리는 가능하면 완벽해 보이고 싶어 한다. 최소한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육체적 문제점을 말하길 꺼려했던 건 이런 이유였던 것 같다. 우리는 비주얼의 세상에서 육체적인 우월함은 존중하고, 정신적 질환을 미화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우울증보다 치질을 더 감추고 싶었던 이유인 것 같다.
덧붙여 : 우울증, 치질 모두 질환입니다. 창피함은 아닙니다만 좀 더 많이 읽혀보고자 소위 어그로를 끌었습니다. 질타하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https://brunch.co.kr/@teamturtle/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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